이미지 출처: 한길사 홈페이지 (http://www.hangilsa.co.kr)
칸트의 글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말에는 관계대명사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칸트는 관계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문장을 만들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관계대명사절 안에 또다시 관계대명사절, 그 안에 또 관계대명사절을 넣는 일은 부지기수다. 더군다나 전치사라는 것도 우리말에는 없는데 이 전치사를 동반하여 관계대명사절을 만드는 일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 또 칸트다. -- 이 문장을 쓸 때 나에게는 약하게나마 증오의 감정이 일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관계대명사를 쓰면 당연히 문장은 길어진다. 그래서 한 문단이 단 두서너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칸트 책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데 칸트 문장의 이와 같은 특징은 비단 우리에게만 어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손가락이 한 손에 다섯 개밖에 없어서 칸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힌스케 선생님의 농담은 독일어가 모국어인 독일학생들을 향한 것이었다. 한 문장 안에 들어 있는 관계대명사절 및 부사절들이 다섯 개가 넘어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여 그 절들의 시작점을 집고 있어야 할 손가락이 독일인에게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리학>의 문장은 대부분 짧다. 그래서 짧은 문장의 이 <논리학>은 언뜻 보면, 특히 칸트 문장의 특징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사람들에게는 쉬워 보인다.
그러나 칸트 철학이 난해한 원인은 그의 문장 특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장 큰 원인이 독창성과 결합하여 있는 방대함에 있다고 본다. 칸트는 거의 모든 개념을 스스로 정의하면서 사용한다. 이미 주어진 개념들도 스스로 다듬어서 사용한다. 그래서 그가 부여한 의미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읽어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를 알 길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런 개념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다. 난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논리학>도 그의 독창성과 방대함이 일으키는 난해함에서 예외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논리학>에는 칸트의 다른 책에는 없는 색다른 종류의 난해함이 있다. <논리학>은 칸트가 출판하려고 직접 쓴 책이 아니다. 프리드리히 마이어가 쓴 교재를 읽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그 교재의 여백에 쓴 메모, 그리고 그 교재를 처음 구입할 때 하드카버 제본을 맡기면서 아예 메모용으로 매 장 사이에 끼워 넣게 했던 빈 종이에 쓴 메모, 또한 추측하건대 당시에 학생들끼리 돌려보던 지난해 혹은 지지난해 논리학 강의록 등에 기반하여 예쉐라고 불리는 칸트의 제자가 펴낸 책이다. 그러니까 이 <논리학>에 나오는 문장이 칸트 본인의 문장인지, 아니면 예쉐의 문장인지 정확히 구별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하튼 <논리학>의 짧은 문장은 예쉐가 칸트의 글을 잘 소화해서 짧게 표현했기 때문에 짧아진 것이 아니라, 메모에 불과한 표현을 단지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으로 만들기만 한 것이어서 짧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칸트는 강의하는 중에 이 메모를 보면서 살을 붙여가며, 때론 비교하며, 때론 예를 들어가며 구두로 해당 개념들을 설명했을 테지만 <논리학>에는 그런 설명이 없고 달랑 메모만 있다. 바로 이점이 <논리학> 독해의 독특한 어려움이다.
그래서 번역할 때 이런 점을 보완하고자 학술원판에 실린 칸트의 전체 메모(<단편>으로 표시됨), 마이어가 쓴 교재, 다른 학생들이 남긴 강의록, 물론 칸트의 이전 저작들 등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몇몇 부분들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학회 차원의 일정이 정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 문장으로 만들어 완성된 번역본을 내놓아야 했다.
책이 나온 후에 2022년 1월 7일부터 7월 8일까지 약 6개월 동안 <논리학> 강독 강좌를 열었다. 역시나 많은 번역오류와 부족한 표현들이 발견되었다. 스스로 찾아낸 것들, 수강생들이 찾아낸 것들, 여전히 명료하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번역문을 고치면 조금은 나을 듯싶어 수정표를 만들어야 했다. 자료실에 올려 놓은 <논리학 수정표>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인쇄본이 집에 도착한 날 처음 이 책을 눈으로 접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인사동 뒷골목에 있는 고서점에서 먼지가 잔뜩 쌓인 책들 사이에서 낡고 오래된 책 하나를 꺼내 들은 느낌이었다. 표지 사진을 보면 누구나 나와 같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 많은 분이 표지를 디자인 하셨다고 더 나이 많은 출판사 대표님이 알려 주셨다.
그럼에도 우리글로 써서 처음 출판한 책이다. 내용이 새롭고 또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은근히 자부하는 책이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는 책이다.
내용 소개를 위해 책의 머리말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