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박사학위논문을 2004년에 독일의 Peter Lang 출판사에서 출판했다. 책 제목은 <Der Begriff der Welt bei Wolff, Baumgarten, Crusius und Kant> / <볼프와 바움가르텐과 크루지우스와 칸트의 세계 개념>이다. 나의 선생님 노어베르트 힌스케 Norbert Hinske 박사가 펴낸 '18세기 철학 연구' 시리즈의 10번째 책이다. 논문심사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와 이 책을 내는 데에 2년이 걸렸다. 본문 교정, 머리말과 색인 교정, 또다시 전체 교정, 출판본 교정, 이 모든 작업을 나의 선생님께서 직접 해 주셔서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다. 독일 철학계에서 나의 선생님은 철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신 분이다. 그나마  2년 안에 끝난 것이 다행일 것이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교정을 보기 어려운 책이었다. 라틴어 인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도 그런 연유로 그 지루한 작업을 도맡아 주신 것이다. 한국에 와서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서 나의 선생님 이야기도 너무 오랜만에 하게 된다. 갑자기 마음이 아련해진다. 나에게 학자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 분이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글은 아마도 나의 선생님의 평가서Gutachten일 것이다. 독일에서는 지도교수의 평가서가 대학에서 강의를 맡거나 교수직에 지원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에서 이 평가서는 있으나 마나 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교수들과의 친분이 평가서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에게는 강의 개설을 신청해야 하는 곳이 더 이상 대학이 아닌 사회다. 따라서 강의 개설의 가치를 판단할 권한을 갖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평가서를 제출한다.

                   노어베르트 힌스케 박사 교수
                   트리어 대학교 제1학부

김창원씨의 박사학위청구논문 “볼프와 바움가르텐과 크루지우스와 칸트의 세계 개념 ― 1770년 칸트의 세계 개념의 역사에 대한 연구”의

                     평가서
 
I. 논문의 주제성격에 대하여
리햐릍 크로너Richard Kroner는 1921년 그의 유명한 저서 <칸트에서 헤겔까지>를 발표했다. 그러나 <볼프에서 칸트까지>라는 제목 하에 그 저서와 짝을 이룰 작품은 절실히 요구되고 있지만 아쉽게도 오늘날까지 관련된 연구가 없는 실정이다. 김창원씨가 제출한 박사학위청구논문은 나중에는 칸트의 이율배반이론에서 정점에 이르게 되는 세계 개념의 역사라는 부분적이나마 중요한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사전 작업을 해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이 핵심적인 문제의 안내에 따라 볼프부터 칸트까지 이어지는 전체전개과정의 기본노선들도 적어도 그 윤곽에 있어서 가시화된다.

II. 논문의 구성과 내용에 대하여
이 논문은 특별히 두 개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첫 번째 목표는 “볼프의 일반 세계론cosmologia generalis 및 그의 추종자들의 세계론, 그리고 이들 모두의 세계 개념들을 그들 자신의 내적 연관성에서 이해하는 것”(8쪽)이며, 두 번째 커다란 목표는 1770년 교수취임논문 <감성세계와 지성세계의 형식과 그 원리에 대하여>에서 칸트가 길잡이로 삼는 세계 개념을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6쪽 비교).
논문의 제1장은 빈번히 미개척 분야로 밀고 나아가면서 볼프 연구에 탁월하게 기여한다. 이 장이 이루어낸 중요한 성과에는 무엇보다도 라이프니쯔Leibniz와 볼프의 세계 개념의 차이를 드러내어 밝힌 점과 볼프의 일반 세계론의 핵심 역할을 가시화한 점(2절)이 속하며, 또 다양한 각도에서 볼프의 가능성 개념을 분석한 점(3절), 그리고 볼프의 세계 개념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부각시킨 점이 속한다(21쪽 참조). 내가 볼프 연구 문헌을 광범위하게 알고 있지만 그 변경을 특별하게 주제로 삼아 다룬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밖에도 볼프의 세계 개념 정의에서 연결 개념이 초월적 진리를 의미한다는 저자의 테제는 독창적이며 설득력이 있다(52쪽). 마지막으로 이 장의 공로는 브루노 비앙코Bruno Bianco의 볼프 연구가 학문사에 남을 만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추어내었다는 점에 있다 (54쪽). 
철학사에서 특히 미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알렉산더 곹리프 바움가르텐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에 관한 장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 장은 바움가르텐의 세계 개념이 곹쉐드Gottsched의 세계 개념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69쪽 참조)을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 내가 아는 한 이 점은 자립적으로 이루어낸 최고의 전거사(典據史)적인 성과다 ― 볼프와 바움가르텐의 세계 개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기도 한다. 
세 번째 장은 18세기 중엽에 볼프와 그의 학파에 대항하는 적수로 크게 활약했던 크리스티안 아우구스트 크루지우스Christian August Crusius에 바쳐져 있다. 크루지우스에 대하여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점은 형이상학의 전체 구조가 결정적으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크루지우스에서는 자연 신학이 일반 세계론 위에 세워지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거꾸로 자연 신학이 일반 세계론에 토대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85쪽). 그렇게 “일반” 세계론으로부터 “형이상학적” 세계론으로 된다. 저자는 이것이 결과적으로 그의 세계 개념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사려 깊게 드러내고 있다. 전거사적으로 보았을 때 그 영향은 칸트 자신의 세계 개념이 형성되는 데에 중요한 전제조건을 이루며, 이점은 네 번째 장에서 논의된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칸트, 더욱이 1770년까지의 ‘비판전기’의 칸트와 그의 사상발전을 다룬다. 저자는 ― 브리깃데 팔켄베어크Brigitte Falkenberg와 대결하면서 ― 칸트 자신이 일반 세계론 또는 초월적 세계론이라는 분과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 지를 묻는, 놀라운 또 그만큼 흥미로운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때 저자는 그 당시 널리 알려져 있었던 이 새로운 철학 분과에 대하여 칸트가 이상하게도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낸다 (101쪽). (이점은 이름숴Irmscher가 펴낸 헤르더Herder의 강의노트에 의해 증명된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13a절에서 칸트의 독창적인 1770년 교수취임논문의 제목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밀하게 또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면서 분석해 내놓는다. 아마도 이 분석은 이 분야에 대하여 이제까지 써진 칸트 연구 가운데 (내가 파악하고 있는 한) 가장 훌륭하다. 저자의 확신에 따르면 그 제목에 등장하는 “principium formae mundi”라는 개념, 즉 “세계의 형식의 원리”라는 개념은 “칸트에게만 발견되는 독창적인” 개념에 해당한다 (108쪽). 저자는 그 개념이 한 발짝 한 발짝 점진적으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칸트가 최초로 발표한 책과 <새로운 해명 Nova dilucidatio>과 <공간에서 방향의 차이가 생기는 원리에 관하여>라는 1768년 논문을 새롭게 수용하면서 설득력 있게 그려나간다(13c절). 그러고 나서 저자는 마지막 절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1770년의 칸트 자신의 세계 개념 정의를 매우 신중하게 분석하고 또 이러한 식으로 볼프에서 칸트에 이르는 독일 계몽주의 철학이 걸어갔던 길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드러내어 준다.

III. 논문의 우수성과 결점
전체적으로 이 논문은 볼프에서 칸트에 이르는 사상들이 내적으로 적확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더욱이 상당히 높은 고찰 수준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논문은 이 시대가 결코 소위 강단철학이라는 불임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대단히 높은 문제의식에 의해 산출되었던 시대였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와 병행하여 볼프와 바움가르텐과 칸트 연구의 많은 개별 문제들을 밝혀낸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내용을 설명할 때 제시했었다.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한 가지 예로서 특별히 강조될 수 있는 것이 있는 바, 그것은 논문이 중요한 전거사적인 지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지적은 겔리우스 크뤼십Gellius Chrysipp의 것으로 간주되는 숙명에 대한 정의와 관련된다. 이 정의는 논문의 저자가 보여주듯 이미 1724년 요아힘 랑에Joachim Lange한테서 등장하고 또 그러고 나서 칸트의 <새로운 해명>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65쪽 187번 각주). 이 주제에 대하여 저자가 그저 부가적으로 설명했던 것이 지식에 있어서 어떤 진보를 의미하는가를 알아차리기 위해 사람들은 단지 위대한 <학술원판 칸트 전집>의 한심한 ‘주석’(제1권, 566쪽)을 참고해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크루지우스 전집>(제4권 XXIV쪽 이하) 또한 이 문제와 관련되어 보완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손이 많이 갔던 원전 전거를 풍부하게 대고 있어서 저자의 설명을 보강해주는 데 적합할 수도 있을 다른 2차 관련 자료들을 제외시키고 있다고 질책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 할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는 단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칸트의 자연과학적 저술인 <일반 자연사와 천체의 이론>(A XXI, XXVII 이하, 27, 79 이하, 145 이하, 168, 194 이하 쪽) 역시 “세계의 형식의 원리”라는 문제에 의해 이끌어지고 있다는 점만을 덧붙인다. 따라서 언급한 그 문제는 칸트가 교수 임용 신청을 위해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저술들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논문을 출판할 때 저자가 각주에서 이 점을 지적해 준다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상 “감성세계 형식의 원리”에 대한 질문을 더 심화시키려는 목적 하에 칸트가 붙여놓은 1770년 논문 제4장의 주석도 마찬가지 경우에 해당한다. 저자의 주목할 만한 업적은 논문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모든 라틴어 인용에 (이미 번역되어 있는 것이 없는 한) 저자 자신의 번역을 붙여주고 있다는 점에도 있다. 그렇게 할 때 한국인 저자로서 외국어를 다른 외국어로 옮긴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경탄할 만한 일이다. 오늘날 많은 독자들의 부족한 라틴어 지식을 고려할 때 논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다. 볼프나 그의 학파에 대해 철저하게 파헤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은 도저히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물론 일련의 경우 번역에 있어 여러 가지 유보할 점들이 지적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라틴어 “ponere”는 독일 철학 전통에 근거하여 “stellen”보다는 “setzen”으로 (44쪽 참조), 라틴어 “adeo”와 “adeoque”는 볼프의 경우 보통 독일어 “folglich”로 옮기는 더 나을 것이다 (48쪽 참조). 기타 등등. 
의미전달을 방해하는 잘못된 표기를 적어 놓았다:
18쪽 19째 줄: 'Pioret'는 'Poiret'로 (Pierre Poiret를 의미함)
40쪽 14째 줄: 'unendliche'는 'endliche'로
55쪽 27째 줄: 'gefunden'은 'gesunden'으로
115쪽 10째 줄: 'se'를 삭제
134쪽 5째 줄: 'possibilis'는 'possibiles'로
137쪽 17째 줄: quod는 quod non으로
출판하기 전에 많은 부분에서 논문의 언어 표현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IV. 논문의 전체 평가
50년에 달하는 기간에 걸쳐서 세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를 매우 정확하게 추적하고 또 그렇게 하는 가운데 많은 부분에서 미개척 분야로 밀고 들어가는 저자의 전체 업적을 다시 눈앞에 그려본다면 앞서 언급한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은 거의 중요치 않다. 이 업적을 수행함에 있어서 다행스럽게 철저한 철학사적 지식과 철학적 통찰력이 서로 결합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완전히 다른 문화권 출신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외국어로 표현해야 했던 젊은 신진학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믿어지지 않는 업적이다. 논문의 짜임새와 질을 보았을 때 저자가 제출한 논문은 박사학위논문보다는 차라리 교수자격취득논문에 가깝다. 따라서 나는 흔치 않은 점수를 지지한다

숨마 쿰 라우데.


2001년 4월 24일, 트리어
노어베르트 힌스케Norbert Hinske